선거제도개혁, 사법민주화의 출발점 | 정철승

정철승
변호사, 전)한국입법학회 회장

1. 사법개혁을 말해 온 필자가 왜 선거제도를 말하는가

우리 국민은 지난 10년 사이 두 번이나 광장에 나가 헌정질서를 유린한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광장의 불빛이 꺼진 뒤 우리 사회가 달라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광장에서 주권자가 거둔 승리는 끝내 제도의 언어로 옮겨지지 못했고, 권력을 낳는 규칙은 손끝 하나 건드려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법개혁을 이야기해 왔다. 사법권은 공동체의 정의를 선언하고, 국민의 인권을 합법적으로 제한하며, 국가권력의 정당성까지 판정하는 주권의 핵심 권력이다.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헌법 제101조 제1항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과 사법권 사이에 놓인 이 깊은 간극을 메우는 일, 그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사법개혁의 본령이다.

그렇다면 그 간극은 누가 메울 수 있는가. 헌법은 법원의 조직과 법관의 자격을 모두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고(제101조 제3항, 제102조 제3항), 대법원장과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임명할 수 있으며(제104조), 헌법재판관 9인 가운데 3인은 국회가 선출한다(제111조 제3항). 그런데 그 국회를 구성하는 규칙이 바로 선거제도다. 지금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둔 채 사법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생선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2. 현행 선거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가. 주권자의 뜻을 왜곡하는 소선거구제

공직선거법 제21조는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54명을 지역구에서 선출하되, 하나의 지역구에서는 단 1명만 뽑도록 하고 있다.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나머지 표는 사표(死票)가 되어 버리는 구조다.

그 결과가 얼마나 기형적인지는 숫자가 웅변으로 보여준다. 2024년 제22대 총선의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5%, 국민의힘 45.1%로 그 차이는 5.4%포인트에 불과했지만, 두 정당이 가져간 지역구 의석은 161석과 90석으로 무려 71석이나 벌어졌다. 제21대 총선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정당이 이기든 민의는 의석으로 정직하게 옮겨지지 못하고 부풀려지거나 깎여 나가는 것이다.

나. 위성정당에 무너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2020년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공직선거법 제189조 제2항)는 이러한 왜곡을 조금이나마 바로잡아 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은 연거푸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제도의 취지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미래(36.67%)와 더불어민주연합(26.69%) 두 위성정당은 비례대표 46석 가운데 32석을 차지했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母)정당의 품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준연동형 의석배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하면서도, 이 조항이 위성정당 창당을 통제할 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지적하였다(헌재 2023. 7. 20. 2019헌마1443 결정). 즉, 헌법재판소는 “실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이 창당되어 비례대표선거에만 후보자를 추천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다른 어떤 때보다 양당체제가 심화된 결과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 사건 의석배분조항이 무력화되지 않고 선거의 비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연동을 차단시키는 거대 정당의 선거전략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판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위성정당을 막는 입법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빈틈을 메워야 할 자들이 바로 그 빈틈의 최대 수혜자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 높은 진입장벽과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 문턱은 또 얼마나 높은가. 정당을 만들려면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갖추어야 하고(정당법 제17조), 각 시·도당은 그 관할 구역에 주소를 둔 1천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야 한다(같은 법 제18조). 여기에 더해 비례대표 의석은 전국 득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을 얻은 정당에게만 배분된다(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 새로운 목소리는 문 앞에서부터 가로막히고 만다.

이렇게 소선거구제와 위성정당, 그리고 높은 진입장벽이 서로 맞물리면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구조가 완성된다. 두 정당은 겉으로는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는 듯하지만, 실상은 같은 규칙 위에서 함께 기득권을 누리는 공생 관계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는 지역에서는 유권자가 아니라 당권이 국회의원을 결정하고, 조직동원력이 공천과 당권을 좌우하는 사이 정책은 사라지고 자리싸움만 남는다. 개헌 논의마저 선거제도는 건드리지 않은 채 대리인들의 자리다툼에 머물고 있으니,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옛말 그대로다.

3. 선거제도는 어떻게 사법을 가두는가

가. 법률가들이 장악한 국회

제22대 국회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은 61명으로 전체의 20.3%에 이른다. 거대 양당이 상대 진영을 겨냥한 수사와 재판에 맞서기 위해 판·검사 출신 법률가들을 경쟁적으로 공천한 결과다. 인지도가 곧 경쟁력인 소선거구제에서 법조인 출신 후보자의 화려한 학벌과 법조경력은 가장 효과적인 선거홍보 수단이 되어 왔다.

문제는 사법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집단이 사법개혁의 입법권을 쥐고 있다는 데 있다. 원래 정치란 “대립하는 사회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Art of Compromise)”인데, 그런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무조건 법정 등으로 끌고 가 일도양단식으로 싸우는 데만 익숙한 법조인들에게 사법권을 주권자에게 돌려주는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부패 구조를 끊어 낼 법을 전관들에게 만들라고 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에 가깝다.

나. 18년째 구경꾼에 머문 주권자

우리나라에 이른바 사법민주화 입법이라는 명목으로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지 어느덧 18년이 흘렀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배심원의 평결과 양형 의견이 법원을 기속하지 못할 뿐 아니라(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5항), 국민참여재판절차에 회부할지 여부를 판사들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무실하고 형해화된 제도로 전락했다. 반면, 우리와 법문화가 비슷한 일본은 2009년부터 재판원제도를, 대만은 2023년부터 국민법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제도들은 본격적인 사법민주화 입법이라 할만하다. 즉, 일본과 대만에서는 중요한 재판에서 직업법관 3명과 국민들 사이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국민법관(재판원) 6명이 사실인정, 법적용 및 양형 과정에서 동등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이러한 사법민주화입법을 제정하기는커녕 진지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올해 2월 국회는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법왜곡죄 신설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 3법을 통과시켰다.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이 모두는 직업법관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그 내부를 손보는 일에 머물러 있다. 대법관을 몇 명 두고 누가 임명하느냐는 권력 기관 사이의 배분 문제일 뿐, ‘사법권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비어 있다.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국회는 이 질문에 답할 이유도 의지도 없다.

4. 제언 : 선거제도개혁 방안

첫째, 무엇보다 주권자의 표가 정직하게 의석으로 옮겨지도록 선거의 비례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당 득표율이 전체 의석 배분에 온전히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려야 한다.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헌법 제41조 제2항이 하한만을 정하고 있는 의원정수의 확대도 더 이상 금기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의 특권과 세비를 과감히 줄이는 것을 전제로, 정수 문제를 주권자의 공론에 당당히 부쳐야 한다.

둘째, 위성정당을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위성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편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선거 후 위성정당과 합당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국고보조금을 환수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재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정당 설립의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정당법 제17조와 제18조를 개정하여 지역정당의 설립을 허용하고, 비례대표 의석 배분의 봉쇄조항(3%)을 낮추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넷째,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권한 자체를 주권자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규칙의 최대 수혜자인 현역 의원들이 그 규칙을 정하는 한, 어떤 개혁안도 결국 기득권의 계산기를 통과하지 못한다.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의 시민의회가 숙의를 거쳐 개혁안을 만들고 국회는 이를 존중해 입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오늘 이 자리가 그 첫걸음이다.

5. 새로운 국회가 이루어야 할 사법민주화

비례성이 보장되고 다양한 정당이 경쟁하는 국회가 만들어진다면, 비로소 사법을 주권자에게 돌려주는 과제들을 현실의 의제로 올릴 수 있다. 먼저 국민이 직업법관과 동등한 지위에서 사실인정과 양형 결정에 참여하는 국민법관제, 즉 참심제를 도입해야 한다. “법관에 의한 재판”을 규정한 헌법 제27조 제1항과의 관계에서 위헌 논란이 있다면 개헌으로 정면 돌파해야 하는데,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헌법 제130조 제1항). 거대 양당 가운데 어느 한쪽만 등을 돌려도 개헌은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구조이니, 여기서도 선거제도개혁은 사법개혁의 전제가 된다.

아울러 유명무실한 국민참여재판을 실질화하여 시민배심원의 평결에 기속력을 인정하고 특정 사건들은 판사의 결정이 아닌 의무적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제도개선을 하여야 한다, 현재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고 있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법원조직법 제41조의2) 등 법관인사와 관련된 각종 위원회와 절차에도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퇴직 판·검사가 1년 동안만 일정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현행 수임제한(변호사법 제31조 제3항) 역시 원칙적 금지에 가깝도록 그 기간과 범위를 대폭 넓혀서 합법적 부정부패인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6. 맺으며

1919년 3·1혁명으로 이 땅의 백성은 비로소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반민특위는 1949년 강제로 해체되었고, 단죄를 피한 부역자들과 그 후예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어 관료와 언론, 재벌, 그리고 사법 곳곳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눈에 보이는 권력은 선거로,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은 사법으로 심판해야 국가와 사회의 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마저 주권자의 통제를 벗어난 성역으로 남는다면, 그 권력은 대체 누가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선거제도는 권력을 낳는 규칙이다. 사법을 주권자의 품으로 돌려주는 일, 그 첫걸음이 바로 선거제도개혁이다. 이제 주권자의 손으로 직접 그 규칙을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