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의 기본방향과 원칙, 전략 | 곽노현

선거제가 첫 관문이다

정치개혁의 어느 과제를 집어 들어도 결론은 국회의 구성으로 돌아온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는 일과 권력기관을 통제하는 일, 의원의 특권을 줄이는 일이 모두 국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구성을 정하는 것이 득표를 의석으로 환산하는 규칙이다. 승자독식의 선거제가 거대 양당의 과점을 낳고 그 과점이 다른 모든 개혁을 막아서는 관문이 된다.

이 사안은 셀프입법의 전형이기도 하다. 선거 규칙을 그 규칙으로 당선된 사람들이 정한다. 어느 분야보다 이해충돌이 노골적이어서 왜 이 결정을 국회 밖으로 옮겨야 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개혁의 내용과 개혁의 절차를 한 묶음으로 다루어야 하는 까닭도 그래서다. 무엇을 고칠 것인지만 말하고 누가 정할 것인지를 말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일이 되풀이된다.

기준을 먼저 정한다

우리 선거제 논쟁은 대개 결론부터 오간다. 소선거구제를 지키자거나 비례대표제를 늘리자는 주장이 부딪히는데 무엇을 위해 그것을 택하는지는 잘 다투어지지 않는다. 공직선거제도의 제도변수는 대충 꼽아도 10개가 넘고 그 조합은 수십 가지에 이른다. 기준이 없으면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평가 기준은 선거제의 설계목표에서 나온다. 대표성은 던진 표가 권력 형성에 반영되는지를, 비례성은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률이 일치하는지를 묻는다. 등가성은 표의 무게가 지지 대상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지를, 다양성은 성별과 연령, 지역과 직능, 이념의 분포가 의회에 반영되는지를 묻는다. 지역대표성은 지역을 대변할 통로가 있는지를, 유권자 효능감은 원하는 사람을 고르고 잘못한 사람을 떨어뜨릴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여섯 기준이 서로 부딪힌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의석 총수가 정해져 있는 한 지역구를 늘리면 비례의석이 줄고 비례의석을 늘리면 지역구가 줄어든다. 정당명부로 뽑으면 비례성은 올라가되 유권자가 인물을 고르지 못한다. 제도를 고른다는 것은 무엇을 앞세울지를 정하는 일이다. 이 글의 입장은 대표성과 비례성, 다양성을 앞세우되 유권자 효능감을 희생하지 않는 설계를 찾는 데 있다.

승자독식이 받는 성적표

기준을 정했으니 현행 선거제도를 채점한다. 대표성부터 낙제다. 역대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의 사표율은 40%에서 50%를 넘나들었다. 1등 후보가 40%를 얻어 당선되면 나머지 60%의 의사는 권력 형성에서 배제된다. 당선자는 자신을 지지한 소수만 살피게 되고 배제된 다수는 체제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민의의 반영이 아니라 민의의 절단이다.

비례성과 등가성에서는 더 나쁘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득표율 25.5%로 의석률 41%를 가져갔고 21대에서는 득표율 33.4%로 의석률 60%를 차지했다. 거대 양당을 지지한 한 표가 한 표 반 이상의 권력으로 환산되는 반면 제3의 대안을 지지한 한 표는 10분의 1 이하로 수축한다. 표의 무게가 지지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선거는 헌법이 명시한 평등선거 원칙에 어긋난다.

광역의회에서 왜곡이 가장 극단으로 드러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의회 정당투표 50.9%로 의석의 92.7%를 가져갔고 경기도의회에서는 52.8%로 95%를 쓸어 담았다. 다양성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우리 국회는 남성이 80%, 45세 이상 중장년이 90%, 고시 출신이 30%를 차지한다. 사회를 닮지 않은 의회가 승자독식의 산물이다.

지난6년의 실패가 가르친 것

2020년 개정선거법은 정당별 의석 배분의 기준을 바꾸었다. 정당득표율이 비례 47석을 나누는 기준이던 것을 300석 전체를 나누는 기준으로 옮긴 것이다. 최종 의석수를 정당득표율이 정하고 모자라는 만큼만 비례의석으로 채우는 구조다. 1987년 민주화 개헌 이래 이만큼 중대한 정치개혁은 없었다.

그 개정이 반쪽에 그친 것은 3중 희석장치 때문이었다. 연동율을 50%로 제한하고, 정당득표율 상응의석을 넘는 초과의석을 조정 없이 인정하고, 비례의석을 47석 그대로 둔 것이다. 부족의석의 절반만 채워 주면서 초과의석은 100% 인정하므로 준준 연동형이라 불러야 맞다. 소선거구제와 결합한 연동형을 채택하면서 연동율을 50%만 인정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위성정당은 그 허점을 파고든 결과다. 본체 정당은 지역구에만 후보를 내고 비례명부를 내지 않으며 급조한 위성정당은 지역구 후보 없이 비례후보만 낸다. 한 몸인 정당이 서류상으로만 남남인 척 쪼개지면 연동 계산식이 무력화된다. 본체 정당이 비례후보를 내지 않기로 작정하는 뻔뻔함이 위성정당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이 전술을 부르는 조건은 구조와 전망에 걸려 있다. 전체 의석에서 지역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수록, 제1당의 정당지지율이 낮을수록 위성정당을 꾸릴 유인이 커진다. 지역구 비중 84.3%에 제1당 지지율 40% 수준이라는 지금의 조건은 그 둘을 두루 갖추었다. 지역구 비중이 66.7% 아래로 내려가면 제1당이 지역구만으로 지지율 상응의석에 이르기가 어려워져 위성정당이 성립하지 않는다.

위성정당방지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온다. 방지법이 막는 것은 우회로 하나이고 그 우회로를 만들게 하는 조건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지역구와 비례의 구성비를 바꾸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형태를 바꾸어 되돌아온다.

원칙

원칙 하나, 진단과 처방을 맞춘다

같은 제도를 놓고도 무엇을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정반대로 나온다. 사표가 많다는 것을 문제로 보면 비례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정치가 시끄럽다는 것을 문제로 보면 병립형 회귀나 소선거구 유지로 간다. 지역이 소멸한다는 진단은 도농복합안을 낳고 의원이 많고 특권이 과하다는 진단은 정수 축소와 비례 폐지를 낳는다.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를 먼저 다투지 않으면 처방을 아무리 비교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의원정수 축소론은 여섯 기준 어디에서도 점수를 얻지 못한다. 정수를 줄이면 의원 한 사람이 대표하는 국민 수가 늘어 대표성이 떨어지고 줄이는 몫이 대개 비례의석이므로 비례성과 다양성이 함께 나빠진다. 진단도 어긋나 있다. 미국에서 우리 국회의원과 같은 권한을 가진 사람은 연방 535명에 주의회 7,386명을 더한 7,921명이고, 인구비례로 환산하면 우리 의원은 1,200여 명이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도농복합안은 표면의 명분과 실제 효과가 가장 크게 어긋난다. 도시 선거구가 2인이나 3인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고 그렇게 되면 거대 양당이 한 석씩 나누어 경쟁 자체가 사라진다. 지역대표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양당제를 굳히는 셈이다. 농촌 인구가 5%에 미치지 못하고 면적이 넓은 것은 선진국 공통의 현상인데 그것을 이유로 소선거구를 고집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작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일은 군수와 지방의원이 하고 큰 지역은 지역등권 상원이 대표하는 쪽이 맞다.

원칙 둘, 그릇보다 내용물이다

선거구를 어떻게 나누고 의석을 몇 개 둘 것인지가 그동안 논의의 전부였다. 같은 선거구에서 같은 수를 뽑더라도 득표를 의석으로 환산하는 규칙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비례성과 효능감을 실제로 결정하는 것이 이 규칙이다.

우리 기초의회가 그 실물이다. 4명을 뽑는 선거구에서도 유권자에게 표를 한 장만 준다. 단기 비이양식이라 부르는 이 방식에서는 표가 많건 적건 다른 후보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거대 정당이 한 선거구에 후보를 두세 명 내면 지지표가 나뉘어도 동반 당선되고 군소정당은 표를 한 명에게 모아도 당선권에 들기 어렵다. 거대 양당의 나누어 먹기 도구로 변질된 것이다.

단기이양식은 유권자가 한 장의 표에 선호 순위를 매기고 당선 쿼터를 넘긴 후보의 잉여표와 탈락 후보의 표를 다음 순위로 넘기는 방식이다. 4인 선거구의 쿼터가 20%, 5인 선거구가 16.7%다. 표가 순위를 따라 살아 움직이므로 사표가 적고 비례성이 높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문화에 미치는 효과다. 쿼터를 채우려면 상대 진영 지지자의 2순위 표까지 끌어와야 하므로 비방과 흑색선전의 유인이 줄어든다. 2순위 구애효과라 부를 만한 작동이다.

개방형 비례대표제는 겉보기에 단기이양식과 비슷하되 효과가 정반대로 갈 수 있다. 유권자가 후보 개인에게 표를 던져도 그 표가 먼저 소속 정당의 총득표로 산입되기 때문이다. 4인이나 5인 선거구에서 거대 양당이 후보를 대거 내고 조직력으로 표를 고루 나누게 하면 합산 득표율이 절반 남짓이어도 의석은 대부분 가져가는 변종 승자독식이 생긴다. 득표율이 절반인데 의석을 8할 가까이 차지하는 것을 비례대표제라 부를 수는 없다.

원칙 셋, 선거마다 처방이 다르다

당내 경선과 집행권자 선거, 총선과 광역의원 선거, 기초의원 선거는 성격이 서로 다르다. 지금 우리 논의는 총선 하나에만 매달린다. 총선 제도를 아무리 잘 고쳐도 후보를 정하는 절차가 그대로면 유권자가 고를 대상 자체가 밀실에서 정해지고 지방의회가 그대로면 정치의 저변이 바뀌지 않는다. 다섯 유형을 함께 다루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내 경선은 경쟁자가 나타날 경우 법으로 의무화하고 인기투표형 여론조사를 걷어낸다. 권리당원이 정책 토론으로 검증하게 하고 순위투표제로 단번에 과반 지지 후보를 뽑는다. 한 사람을 뽑는 선거에도 순위투표제를 적용한다. 후보가 난립하면 30%대 득표로도 당선되어 유권자의 60%가 반대한 사람이 4년을 다스리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결선투표는 같은 일을 하지만 투표를 한 번 더 치러야 한다.

총선은 위성정당방지법으로 준연동형을 살린 뒤 연동율을 100%로 올리고 비례의석을 150석 이상, 의원정수를 400석으로 늘린다. 소선거구 지역구의원은 그대로 남긴다. 지역구의원은 유권자와 접촉면이 넓고 책임추궁이 쉽다는 장점이 있고, 국회가 이념과 정책에 따른 비례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면 지역 민원 해결사로 기울던 성향도 상당 부분 완화된다.

광역의회는 6인에서 12인을 뽑는 대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바꾸고 개방형 명부를 결합한다. 시도 단위라 준연동형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유권자가 이미 인물보다 정당을 보고 투표하기 때문이다. 기초의회는 4인에서 5인 중선거구 단기이양식으로 바꾼다. 지금의 2인 선거구 둘을 합치거나 2인과 3인 선거구를 합치면 되므로 기술적으로 어려울 것이 없다.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당 대표의 공천 권력만 커진다는 불신이 따라붙는다. 전략공천을 원천 금지하고 상향식 선출을 법제화하는 것, 여성 홀수순번제와 정치적 소수자의 당선 안정권 배치를 선거법으로 강제하는 것, 유권자가 특정 후보에게 직접 기표해 정당 총득표의 5%를 넘기면 당의 순위를 깨고 우선 당선되게 하는 부분 개방형 명부를 두는 것으로 답한다.

원칙 넷, 세 장벽을 함께 낮춘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해도 진입 요건이 높으면 새 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고, 새 세력이 들어와도 득표가 의석이 되는 규칙이 그대로면 연합이 형성되지 않는다. 낮추어야 할 장벽은 봉쇄조항이라는 진입 요건과 소선거구제라는 구조 장벽, 사표 심리라는 마음의 장벽이다.

2026년 1월 29일 헌법재판소가 비례대표 3% 봉쇄조항을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환영할 일이되 아쉬움이 남는다. 병립형 시절의 3%는 비례 47석 가운데 1석 남짓을 뜻했는데 연동형에서는 같은 3%가 300석에 연동되어 50% 연동형에서도 4.5석에 해당한다. 같은 숫자의 무게가 달라진 구조를 헌재가 충분히 파고들지 못했다. 1%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 1%의 의석을 주는 것이 비례적 선거정의이므로 봉쇄조항은 1%로 낮추는 것이 옳다.

봉쇄조항을 낮추면 극단 세력이 의회로 들어온다는 우려가 따라온다. 민주주의의 힘은 포용과 순치에서 나온다. 광장은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공간이고 의회는 이질적인 생각이 모여 쟁론하고 타협하는 공론장이다. 독일에서 극우정당이 의회에 진출했으나 비합리성 탓에 소수로 고립된 것이 그 실물이다. 진입 장벽을 낮추면 보수진영도 분화해 보수 유권자가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사표 심리는 제도로 풀어야 한다. 요즘 원로들이 역설하는 연합정치론에는 선거 규칙을 그대로 둔 채 연합을 사고한다는 결손이 있다. 지금의 규칙 아래서 연합은 후보 단일화와 선거연대, 비례 위성정당 같은 임시방편의 정치공학으로 귀결된다. 순위투표제는 거대 정당이 제3당 지지자의 2순위 표를 구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연합이 선의의 문제에서 생존의 문제로 바뀌는 것이다.

셋을 따로 다루면 어느 것도 넘지 못한다. 봉쇄조항만 낮추면 작은 정당이 비례의석 몇 석에 갇히고, 소선거구제만 고치면 유권자가 사표를 걱정해 여전히 큰 당을 지지하며, 집계 규칙만 손보면 연합할 상대가 없다. 순서를 정하되 한 묶음으로 밀어야 한다. 이 셋을 함께 다룰 수 있는 기구가 국회 안에는 없다. 셋 모두 현직 의원의 당락에 곧바로 걸리기 때문이다.

전략

전략 하나, 지방선거를 먼저 손댄다

우리 선거제 논의의 오랜 결손은 국회의원 선거만 다루고 지방선거는 손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광역의회는 의석의 90%를 소선거구에서 뽑고 나머지 10%만 정당득표율로 나눈다. 기초의회는 2인에서 5인 중선거구를 쓰되 한 표만 행사하므로 사실상 소선거구에 가깝게 작동한다. 국회의 84.3% 소선거구제를 고치자면서 그보다 심한 왜곡을 그대로 두는 것은 직무유기다.

왜 고치지 않는지는 셈법을 들여다보면 드러난다. 수도권 광역의회를 두고 거대 양당은 이번 4년은 한쪽이 독식하고 바람이 불면 다음 4년은 다른 쪽이 독식한다고 여긴다. 기초의회에서는 5인 선거구를 아예 설치하지 않고 4인 선거구마저 2인 선거구 둘로 쪼개 왔다. 견제 받지 않는 지방의회에서 단체장의 비리가 덮이고 예산 심사가 요식행위가 되는 것이 그 결과다.

지방선거를 먼저 손대는 데는 이점이 있다. 이해충돌이 덜하다. 국회의원 선거제를 고치는 일은 그 법을 만드는 사람의 당락에 곧바로 걸리지만 지방선거제는 강도가 다르다. 실증도 쌓인다. 순위투표제와 단기이양식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으므로 지방선거에서 먼저 시행해 개표 시간과 무효표를 확인하면 총선으로 확대할 때 반대 논거가 크게 줄어든다. 되돌리기도 어려워진다.

5인 선거구의 쿼터 16.7%를 영호남 데이터에 대입하면 변화가 보인다.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 20% 안팎을 얻은 제3지대가 선거 연대로 쿼터를 넘겨 최소 1석을 확보하고 국민의힘도 2순위와 3순위 표를 이양 받아 교두보를 마련한다. 부산과 경남에서 40%를 넘나드는 민주당 지지가 복수 의석으로 전환되고 대구와 경북에서도 한두 석이 탈환된다. 영호남의 양당 독점이 소선거구제가 빚어낸 착시였음이 드러난다.

지방자치 3법 개정과 지방선거제 개혁, 지역정당 허용은 한 묶음으로 가야 한다. 주민투표법과 주민조례발안법, 주민소환법을 고치는 일은 국회 과반으로 가능하다. 지금은 정당법이 중앙당을 서울에 두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갖추도록 요구해 한 도시의 문제를 풀려는 정당이 생겨날 수 없다. 요건이 낮은 것부터 통과시켜 힘을 쌓는다는 원칙이 여기에 적용된다.

전략 둘, 90% 싹쓸이를 거부한다

현행 룰을 그대로 두면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제1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역대기록을 보면 소선거구제 아래 선거를 치르면 한 정당이 싹쓸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제1당으로서는 다 이길 판에 왜 제도를 바꾸어 남 좋은 일을 하느냐는 유혹에 빠지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 싹쓸이야말로 독배다. 지지율이 60%라면 의석도 60%만 가져가는 것이 정의다. 의석의 60%를 가진 여당은 40% 야당의 견제를 받으며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해도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 지지율은 60%인데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의석을 90% 차지하는 것은 의석 도둑질에 가깝다. 제1당의 몫을 과다한 90%에서 정당한 60%로 낮추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선거정의의 실현이다.

상대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자는 발상은 승자의 저주를 부른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양 세력의 실질 득표율 격차는 각각 1%와 5%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승자독식의 제도는 민심이 5%만 출렁여도 방향을 바꾼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반대쪽이 광역의회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하고 학생인권조례 폐지 같은 퇴행 입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그 실물이다.

전략 셋, 의원특권 감축을 앞세운다

연동율을 100%로 올리고 초과의석까지 조정하는 일은 비례의석을 150석 규모로 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고, 그것은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관건인 의원정수 확대에는 강력한 반대 정서가 있으므로 순서를 바꾸어야 한다. 비례성을 강화하는 개편을 하려면 의원특권 감축을 먼저 또는 동시에 해야 한다. 2023년 공론화에서 시민참여단은 의원 지원액 동결로 증원 비용을 충당할 경우 55%가 정수 확대에 찬성했다. 조건이 붙은 찬성이었다는 뜻이다.

제헌헌법 당시 의원정수가 200명이었는데 인구가 2.5배 늘어나는 동안 정수는 1.5배 늘었다. 특권을 그대로 둔 채 머릿수만 줄이자는 주장은 대표성을 깎으면서 특권은 손대지 않는 거래다. 특권을 내려놓는 쪽이 정수 확대의 명분을 얻는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지도자다.

전략 넷, 규칙은 선수가 정하지 않는다

2023년에 국회가 이례적인 일을 했다. 전원위원회를 소집해 의원 100명이 나흘 동안 발언했고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 500명이 16시간 동안 학습하고 숙의한 뒤 의견을 밝혔다. 그 결과를 보면 시민이 학습하면 어디로 가는지와 그 답이 이해당사자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가 함께 드러난다.

숙의를 마친 시민의 답은 뚜렷했다.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70%가 찬성했고 축소 의견은 10%로 내려갔다.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 58%, 연동율 유지나 강화에 52%가 찬성했으며 의원특권 감축을 전제로 한 정수 확대에 55%가 찬성했다. 의원특권을 줄여 정수를 늘리되 늘어난 몫을 비례대표로 채우고 연동형을 살리라는 것이 숙의 시민의 뜻이었다.

정개특위는 같은 결과를 다르게 편집했다. 국민 84%가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을 앞세우고 그 개편 대상이 현행 연동형이라고 해석했다. 시민참여단이 떠올린 제도가 위성정당으로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한 연동형이었을 리 없다. 그들이 바꾸자고 한 것은 오랫동안 경험한 소선거구 중심 병립형이다. 숙의 전에도 77%가 바꾸어야 한다고 답한 사실이 그 해석을 지지한다.

도농복합안에 과반이 찬성했다는 결과는 피상적이다. 도시 지역을 몇 인 중선거구로 할 것인지가 제시되지 않았고, 2인과 3인 중선거구가 양당제를 강화한다는 사실도 자료집과 숙의 과정에서 빠졌다. 크기를 모르고 찬성한 것은 찬성이라 하기 어렵다.

이 공론화가 국회 수준을 넘지 못한 까닭은 설계에 있다. 자료집을 엮고 문항을 정하고 결과를 해석하는 일이 모두 이해당사자의 손에 있었다. 심판이 규칙을 정하고 점수를 매기고 판정까지 한 셈이다. 참여자에게서만 이해관계를 걷어냈고 설계와 해석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권고에 그치는 숙의는 언제든 덮인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사례가 대조를 이룬다. 선거법 개정안 작성을 추첨으로 뽑은 시민에게 맡겼고 전문가들은 독일식 연동형을 점쳤다. 의장을 포함한 161명의 시민의회는 찬성 146 대 반대 7로 중대선거구 단기이양식을 골랐다. 비례성이 조금 덜하더라도 자기 손에 남는 것이 많은 쪽을 택한 것이다. 시민의회의 정당성이 무이해관계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 사건이 보여준다.

전략 다섯, 내용과 절차를 한 묶음으로 낸다

선거제 개혁은 개헌보다 어렵다. 의결 요건만 보면 반대다. 개헌은 국회 재적 3분의 2와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선거법 개정은 과반이면 된다. 요건이 낮은 쪽이 더 어려운 까닭을 짚어야 한다.

손익 계산이 정확히 나온다. 개헌에서 다루는 대통령 임기나 권한 배분은 여야가 서로 다른 시점에 이득을 볼 수 있어 거래가 가능한데 선거제는 다음 총선의 의석이 곧바로 걸린다. 되돌리기도 쉽다. 개헌으로 정한 것은 다시 3분의 2가 있어야 바꾸지만 선거법은 과반이면 언제든 되돌린다. 합의가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애초에 합의가 어렵다.

이해당사자가 곧 결정권자라는 사정이 가장 근본이다. 자기 사건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사람에게서 공정한 결론을 기대할 수는 없다. 게임의 규칙은 선수가 정하지 않으며 1위와 2위 팀 선수만 모여 정해서는 더 안 된다. 거대 양당이 개방형 비례제 같은 타협안에 끌리는 것도 그것이 비례의 외피를 쓴 채 독점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과 절차를 한 묶음으로 내놓는다. 선거제 개편안의 작성을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의회에 맡기고 자료 작성과 전문가 패널 구성은 국회가 아닌 독립 기구가 맡는다. 시민의회는 권고에 그치지 않고 안을 직접 작성하며 그 안은 국회 의결이 아니라 국민투표로 확정한다. 권고에는 자동 회부와 90일 심사 기한, 부결 이유 공개라는 절차적 구속력을 붙인다. 그 결과가 되돌려지지 않도록 핵심 원칙은 개헌으로 헌법에 담는다.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국면이라면 차차기 총선부터 적용할 방침을 정하고 진행해야 한다.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유불리 예측이 정확해져 합의가 더 어려워진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시점을 고르는 것이 합의의 조건이다.

준비된 안이 있어야 한다

득표를 의석으로 환산하는 규칙은 기술적 세부가 아니라 정치의 골격이다. 선거구 획정을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집계 규칙만 바꾸어도 정치가 통째로 달라진다. 뉴질랜드는 영국식 소선거구제 국가였는데 두 차례 국민투표를 거쳐 1996년 연동형으로 전환하자 100년 양당제가 선거 두 번 만에 끝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과 절차, 그리고 시간이다. 2028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한 번 더 보게 되든 개헌 국면에서 선거제가 다시 논의되든 그때 꺼내 놓을 안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 안은 국회가 아닌 곳에서 나와야 한다. 두 번의 탄핵이 증명한 시민의 역량을 화재 진압에만 쓰고 마는 것은 너무 아깝다.